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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2017-

같은 지향점에 대하여 (채우장 후기)

지난 주말, 서울 연희동의 제로웨이스트 카페인 '보틀팩토리'에서 '채우장' 장터가 열렸다. 그들답게 제로웨이스트를 추구하는 장터로, 셀러들은 일회용품 사용을 하지 않으며 구매를 원하는 손님이 직접 용기나 그릇에 담아가야 한다. 정해진 용량의 패키지를 파는 것이 아니라서, 필요한 만큼의 양을 저울로 재어서 판매하게 된다. 이번 채우장에 처음 셀러로 참여하게 되었으며, 다른 장터 준비에 대해 필요한 물건들도 달랐다.
우선 저울과 국자, 설거지용 면보, 손수건 등 디스플레이와 패키지 용품보다 주방용품이 많았다.  티슈, 비닐 등 일회용품을 대신하여 흐르는 물에 씻고 더러워지면 바로바로 닦아 쓰기 위해서다. 그리고 판매 물품 (이번에는 술지게미 요거트와 쿠키를 팔았다)를 담는 용기로도 플라스틱 대신 유리병을 택했다. 평소에도 청이나 실온보관용으로 유리병을 많이 쓰고 열탕 소독으로 확실하게 씻을 수 있어 여러모로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판매용 포장을 하지 않으니 벌크 형태로 담아가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처음에 포장을 하지 않으면 물건의 완성도가 낮아 보일까 걱정을 하였다. 일본처럼 결백에 가까운 포장까진 아니어도, 손님이 사가기도 쉽고 거기에 여러 물품 정보들도 붙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런 포장은 대량생산에만 필요한 것 같다. 판매자와 소비자가 만나지 않고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물건이니, 정보를 물어볼 수도 없고 먼 곳에서 운반을 해오기 때문에 포장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 그리고 패키지 디자인 분야가 있을 만큼 경쟁을 위해 제품의 실제 모습보다 '보여지는 인상'에 더 신경 쓰다 보니, 같은 물건인데도 새로운 패키지로 나오는 제품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소규모 생산으로 직접 소비자와 만나는 판매자에겐, 포장 용품을 사서 꾸미고 패키지 디자인까지 완성하는 것이 제품 만드는 일보다 더 힘들고 돈도 많이 들어간다. 대량생산된 공산품에 뒤지고 싶지 않고 손님에게 정성 없어 보일까 봐 그동안 포장에 신경 썼던 것도 사실이고, 공기차단과 형태 유지를 위해 할 수 없이 비닐 포장을 써야 하는 사실이 불편했었다. '그런' 세상밖에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채우장 장터는 그렇지 않았다. 1.5ℓ 유리병에 요거트와 쿠키를 가득 담아 병뚜껑을 잘 닫아주면 끝. 대신 재료와 보관 방법 등 제품안내를 위한 푯말과 용량별 가격측정용 메뉴판을 따로 만들었다. 어떻게든 손님에게 물건에 대한 정보를 상세히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장터 당일, 떨리는 마음으로 물건을 진열하고 손님을 기다렸다. 원래 카페로 영업하다가 한 달에 한번 장터가 열리는데, 장소가 넓지 않은 점도 있지만 물건을 사기 위해 차분히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가격과 용량을 묻고 담아주는 동안 손님과 자연스럽게 대화 할 수 있었는데, 놀라운 것은 내가 제로웨이스트에 대해 한마디도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손님들은 제로웨이스트가 뭔지 미리 알고 있었고 그걸 실천하러 오신 분들이었다. 그리고 밀폐용기, 보냉가방, 도시락통, 텀블러 등 사전에 공지한 용기를 손수 챙겨와서 담아갔다. 서로가 가지고 있는 지향점을 이해하고 말없이 통하는 느낌이란, 정말 짜릿했다. 판매자 소개글에 써둔 '각자의 삶의 방식은 달라도 지향점이 같은 사람들과 많이 만나고 싶습니다.'라는 문구가 실현되고 있음이 느껴지는 감동이었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판매자와 소비자가 아니라, 비전화공방에서 말하는 '동료'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보통 정산의 경우에도 품목별 판매 개수만 세면 되었지만, 이번에는 용량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하나하나 기록을 하며 계산을 했다.  이런 결제 시스템이 복잡할까 봐 걱정했는데 주최 측인 보틀팩토리에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정산 방법을 제시해 주어서 걱정할 부분은 없었다. 스텝과 대표님이 차분하지만 순조롭게 장터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며, 이것이 자연스레 장터 분위기로 이어지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셀러의 경험을 넘어 여러 가지를 느끼게 해준 하루였다. 또다시 그들과 만날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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