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돌가마 워크숍 때 후지무라 교수님 말씀과 수업 내용을 기록했던 수첩을 잃어버렸다. 워낙 물건을 안 잃어버리는 성격이라 정리하다 보면 나올 줄 알았는데 결국 찾지 못했다. 건물 화장실에 메모도 남겨봤지만 소용없었다. 스스로 위로하기를, 지난 3개월보다 앞으로 8개월의 기간이 더 중요하니 지금부터라도 놓치지 않으면 괜찮을 거라도 다독였다.
비전화공방을 시작할 때부터 궁금하고 기대하였던 일본 현지 연수가 지난 7월 동안 있었다. 한국에서 배울 수 없는 것과 느낄 수 없는 것을 즐기고, 배움도 좋지만 나스와 공방 자체에 대한 친밀감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교수님이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17일간 나스에서 첫 합숙을 하였다. (일본 측에서는 우리가 온 것에 대해 ‘합숙’이라고 이야기 했다. 연수보다 훨씬 이해가 잘되는 단어였다. 그 외에 사용하는 단어에서도 섬세함이 보여서 무척 마음이 들었다.) 교수님과 가진 발표 자리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출발 직전에 받은 스케쥴 시트를 보며 기술과 공부가 주로 진행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지내고 보니 그런 것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깨닫고 배우는 점들이 많았다. 같이 하루 종일을 지내고, 같이 자고, 동물들과 산책하고, 목욕탕을 가고, 별을 보면서 서울에서는 가지지 못할 진한 경험을 공유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수업의 경우에도 다른 외부 환경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집중할 수 있는 공간 안에서, 배우는 시간 동안은 집중 있게 진행하고 남은 시간에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능해서 좋았다.
멀고 꿈만 같지만 실제로 하는 일본 비전화공방을 몸소 체험하면서, 사실 서울 비전화공방이 허상의 존재에 더 가깝지 않은가 생각했다. 아직은 경험보다 말로 만들어진 공간 안에서, 그것이 모든 진실인 듯 서로 투닥거리며 지내오지 않았는지. 자신도 그것이 전부라고 믿고 힘듦을 수행이라고 치부한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되었다. 서울 비전화공방이 일본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곳에서 느낀 감성과 경험을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어떻게 풀어헤쳐 나가야 하는지, 교수님과 나스에서 만난 인연들을 계속 이어나가며 고민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일 것이다. 그리고 제작자와 일본 비전화공방 사이에 있는 서울 비전화공방 사무실은 어디에 있고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 지금은 서로 비슷한 경험치로써 이야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수첩을 잃어버린 것은 오히려 좋은 수가 되었다. 아직 남은 8개월의 기간이 무척 기대된다. 나아감에 두려움은 없다.
7월 마지막 날, 노엘라
<활동보고서>
기술
1.1 패시스 솔라 페이퍼 하우스 1/4 제작, 장작 패기, 전기톱 사용, 방사능 실측정(채소류), 금속 가공, 2x4공법, SVO엔진 개조, 마르쉐 출품 품목 별 설계도, 트랙터와 포크래인 운전, 농사 등
철학
2.1 모든 것은 들어가는 ‘문’을 만드는 과정이다. 상대방이 노력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
일
3.1 크레이티브 커먼즈. 서로 공유하고 정보를 발신한다. 수리가 아닌 ‘리스토어’를 한다. 에너지가 존재하는 곳에서 일을 시작한다.
동료
4.1 12명의 제작자, 일본제자 소헤이와 유카, 후지무라 교수님, 켄스케さん、 유리코さん, 마시さん, 카스미さん, 마사코さん, 페타와 무크와 키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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