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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yourself

2020.06.19

아침에 눈을 뜨니 7시. 역시나 이 시간에 밭에 가 있겠다는 목표는 보기좋게 빗나갔다. 어이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날이 흐려서 지금 나가도 괜찮겠다라고 생각했다. 밭에 갈 준비를 하고 마지막으로 어항을 살피는데 할아버지 구피가 죽어 있다. 2년 전 겨울, 멈춰버린 온도계로 때죽음을 당했던 사건 속에서 살아남은 마지막 개체 였다. '제대로 된 이별'로 인사를 했다.

 

밭으로 가니 논에 오리 두 마리가 걸어다닌다. 음악을 들으며 밭관리를 했다. 캘리포니아 양귀비 무리도 한창 피어나고 오르레아도 꽃망물이 맺혔다. 다음주에 필 것 같다. 애호박과 토마토도 익어간다. 풀들의 자라는 속도도 느려졌다. 땀이 나다가도 가끔 불어보는 산바람이 시원했다. 오늘도 앵두를 따 왔다. 잎채소 수확을 잔뜩 했는데 버스에 두고 내렸다. 

 

집에 와서 매트에 누워있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좋아하는 옷을 골라 입고 다시 나갈 준비를 했다. 하루에 두번을 나가니 고양이가 째려본다. 오랜만에 방문한 성수는 여전히 젊은 사람이 많았다. 서울숲을 마주하는 어느 공간에서 인사를 나누고 짧은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마친 후 가야금 연주를 보는데 역시 전공자는 한 음 한 음 연주하는 것 조차 다르구나 라고 느꼈다. 달밤 옥상에서 퍼지는 현의 소리는 아련 했다.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이 곳에 그들이 사는 곳인데..' 라고 생각했더니 진짜 그들을 골목에서 만났다. 놀랍고 반가워서 인사하다가 그들 집으로 초대받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근황이나 고민이 비슷한 부분도 있어 서로 조언을 해줬는데 왠지 지금 받고있는 심리상담보다 훨씬 좋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주에 받으러 가면 주제에 대해 다시 이야기 나눠봐야 겠다. 이야기는 아직 한참 남았는데 막차 시간이 다가와서 서둘러 집에서 나왔다.

 

중간에 갈아타는 곳에서 지하철이 끊겼다. 다행히 조금 걸어가면 버스를 타고 집에 갈 수 있어 을지로 3가의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막차타고 밤길 걷는 것이 언제였는지. 길바닥에서 술먹고 싸우거나 경찰과 시비붙은 사람들이 보인다. 골목 안에는 젋은 사람들이 낮처럼 환하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코로나는 여기에서 만큼은 없는 이야기 처럼 보였다.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 같았다. 저들이 웃고 마시는 동안 누군가는 울고 아침까지 지새우고 있다는 걸 알까. 겨우 버스를 타고 창밖으로 찻길에 서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니 다들 사연있어 보이는 표정으로 핸드폰을 붙들고 있다. 누군가에게 저렇게 전화를 해본 것이 언제였는지.

 

날짜가 바뀌어 들어온 나를 고양이가 반겨준다. 집에 와서 한숨 돌리니 배아픈 날이 시작되었다. 얻어온 도시락을 먹으며 오늘의 일기를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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