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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공간-노엘라하우스

막걸리 빚기 10회차

여름 무더위 때문에 2달을 쉬고 빚는 막걸리는 무척 오랜만에 만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허둥대기도 했지만, 그동안 써온 막걸리 일지를 보며 다시 감을 찾기도 했다. 지난 2달 동안은 술지게미를 활용한 가공품 연구를 하고 다른 지역의 전통주를 마셔보고 막걸리를 좋아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에 보안여관 세모아 장터에서 ‘한국의 銘酒’라는 옛 책을 구매하게 되었다. 1977년에 초판이 나온 책으로 5판까지 찍은 걸 보면 예전에도 술에 대한 관심은 참 높았던 것 같다. 한문이 많지만 酒心? 으로 올겨울에 정독할 예정이다.
다시 술빚는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과정을 추가한 것이 있다. 이때까지는 치대더라도 쌀알이 으스러지지 않도록 신경 써서 했는데, 이번에는 아주 곤죽이 되도록 치대었다. 치대는 시간은 50분으로 동일했지만, 힘은 2배 정도 더 든 것 같았다. 물을 절반만 넣고 치대다 보니 엄청 된 반죽을 맨손으로 계속 만지게 되는데, 액괴를 가지고 노는 느낌이 이런 거랑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손의 감각이 살아나면서 스트레스도 날아가는 느낌. 확실히 힘주어 치대어주었더니 보통 이튼날부터 1차 발효가 활성화되던 지난번에 비해, 첫날부터 활성화가 되면서 내부온도가 올라갔다. 그리고 10일을 조금 넘겨 걸러 보았는데 신맛이 덜해지고 알콜향이 상대적으로 강한 느낌이었다. 1주일 정도 숙성시키면 좀 더 안정화된 맛있는 술이 될 것 같다. 원주의 알싸함은 언제나 짜릿하고 좋다.

 

어떤 사람들은 막걸리 혹은 술이 너무 독하니 다른 것을 첨가하여 연하게 마시는 걸 즐기는 사람이 있다. 취향이 다름을 존중하고 본인도 칵테일을 좋아하니 딱히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술이 무조건 달아야 한다는 것에는 조금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원주原酒라고 하는 말은 말 그대로 오리지널의 무채색 상태이다. 술에게 무채색의 상태란 도수가 높다는 뜻이다. 그래야 다르게 섞기거나 향을 첨가할 때 변화 대상이 될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원주마저 달거나 변형이 일어나 있으면 어떤 기준으로 다르게 변할 수 있을지 어렵게 된다. 마치 음악을 만들기 위해 악기 녹음을 하는데 오리지널 소스에서부터 각종 이팩트를 걸어버리면, 믹싱이나 마스터링 과정에서 변화의 폭이 좁아지고 기준점이 없어 편집이 힘들어지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 녹음에 있어서도 중요한 건 가장 순수하게 그 악기 소리 그대로 받는 것이다. 그러니 막걸리의 순수한 상태라고 본다면 처음 걸러낸 원주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술을 달게 마시는 것을 조금 무섭게 생각한다. 그건 자신을 위해서 마시는 술이 아닐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러니저러니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얼마 전에 막걸리로 칵테일을 만들어보았다. 술지게미로 발효시킨 두유요거트를 섞은 레시피였는데 또 다른 술의 맛을 발견할 수 있어 재밌었다. 이렇게 마시면 정말 술을 많이 마시게 되겠구나라고 걱정은 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맛보여주고싶다라고 느꼈다. 내가 빚은 술로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풍경. 늘 신기하고 기대된다.

 

 

 

 

여름지나 처음 빚는 술을 코누마 히로시 작가님으로 부터 받은 잔에 꼭 마셔보고 싶었다.

한국에서 막걸리 빚는 이야기를 들려드렸더니 이 잔으로 마셔보라고 내게 주셨다.